이천 설봉산성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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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개요
이천 설봉산성은 이천의 설봉산에 위치한 삼국시대 산성이다. 약 3만여 평의 고원지대에 자리 잡고 있으며, 계곡을 감싸 안은 포곡식 산성이다. 성벽은 흙으로 쌓았으며 일부 석축도 남아 있다. 석축, 석편, 토기편과 건물터, 장대지, 우물터, 수구 등 유적이 발견되어 삼국시대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보여준다. 고구려 장수왕 시기에서 신라 진흥왕 시기 사이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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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천 설봉산성 - [유적/문화재]에 관한 문서 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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개요 | |
이름 | 이천 설봉산성 |
로마자 표기 | Icheon Seolbongsanseong Fortress |
위치 | 경기도 이천시 사음동 산24번지 외 |
지정 정보 | |
구분 | 사적 |
지정 번호 | 423 |
지정일 | 2000년 9월 16일 |
면적 | 137,098m2 |
역사 | |
시대 | 백제 |
2. 지리적 위치 및 특징
이천의 진산(鎭山)인 설봉산의 7∼8부 능선, 속칭 칼바위를 중심으로 약 3만 평에 달하는 고원지대가 바로 옛 산성터이다.
이천 설봉산성은 삼국시대, 특히 고구려 장수왕 때 한강 이남 지역을 점령하고 남천현을 설치하면서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. 신라 진흥왕 때 신라와 백제가 이 지역을 다시 수복하기까지 고구려의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.
이천 설봉산성은 대부분 흙으로 쌓았으나, 군데군데 돌로 쌓은 석축도 있다. 석축은 대부분 무너져 내렸거나 매몰되었지만, 정상 아래 부분에는 3~10m의 석축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는 곳도 있다. 이 일대에서는 석축, 석편, 토기편 등이 발견되었다. 건물터임을 알리는 정면 9m, 측면 6.3m의 인공 주춧돌 9개가 정연히 배치되어 있어, 삼국시대의 웅장한 규모의 산성터임을 알 수 있다.
계곡을 감싸안고 쌓은 포곡식(包谷式) 산성으로, 성벽은 대부분 흙으로 쌓았으나 돌로 쌓은 석축도 군데군데 있다. 석축은 대부분 무너져 내렸거나 매몰되고 있는데, 아직도 정상 아래 부분에는 3∼10m의 석축 흔적이 뚜렷한 형태로 남아 있는 곳도 있다.
3. 역사적 배경
산 정상에 서면 주변 지역이 한눈에 들어와, 삼국시대부터 치열한 세력 다툼이 있었던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했던 성으로 여겨진다.
4. 주요 유적
4. 1. 장대지
정상 밑 서쪽 능선 평평한 부분에는 주춧돌이 원형대로 남아 있어 장대지로 추정되며, 군기(軍旗)를 꽂았던 홈을 판 바위와 돌싸움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돌무더기도 3곳 남아 있다.
4. 2. 기타 유적
산성에는 필수 시설인 우물터 2곳과 수구, 그리고 이와 인접한 북문의 흔적이 남아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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